잡담/문답 이공계가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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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항상 좋은 글 많이 읽어 왔습니다만, 직접 글 남기는 것은 매우 오랫만인듯 합니다.
요즘 형국을 보다가, 모 게시판에 올린 글을 편집하여, 글을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좀 흥미롭게 쓰려고 하다보니, 약간 거친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과하게 잘못된 내용이 있다 싶으시면, 무엇이든 지적해주시면 즉각즉각 반영하겠습니다.
영화 같은데 보면, 사업상의 기밀을 외국에 빼돌려서 제 배를 불리려는 나쁜놈이 악당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근의 예로 꼽자면, 박중훈, 차태현이 나온 "투 가이즈" 같은 영화가 있겠습니다. "화이트 칼라 범죄"니, "배운놈이 더 약아빠진 매국노"라느니 하는 이야기와 함께 자주 회자되는 일입니다.
당연히 이런 짓을 하다가 들키면,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법에는 이유는 왜인지 상당히 알기 어렵지만, 빼돌린 기밀이 "기술" 분야이면, 손해 배상을 다 해줘서 금전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게 해 준다하더라도, 정부에서 죄를 물어 감옥에 가둘 수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과학"이나 "기술"이 가지는 무슨 특별한 의의 같은 것에 이유가 있을진데, 정확한 영문은 법률에 잘 설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좀 알기 어렵습니다.
여기까지만해도 그러려니 싶습니다만, 문제가 점점 괴기스러워지는 발단은 과학기술 분야는 내용이 좁고 깊게 세분화 되어 있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영끔 연구원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양반은 4륜구동 자동차의 브레이크 체계 설계 기술을 연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자동차 브레이크 체계랑 상관있는 회사가 무슨 냉면집이나 붕어빵장사, 치과의사나 변호사 처럼 많지가 않습니다. 붕어빵 장사야 재식이네 붕어빵 집에서 한 사람 나가면, 옆동네 듀나네 붕어빵집에서 한사람 고용해 오면 되고, 변호사가 로펌에서 스스로 나가면, 한해에도 우수수 쏟아지는 고시 합격자들 중에 한 사람 데려 오면 됩니다.
그러나 브레이크 체계 설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자동차 회사 딱 한군데고, 순수연구목적으로 연구하는 기관도 한두군데 입니다. 한 사람 나가면 갑자기 데려올 곳도 없고, 한 사람 쫓겨나면 또 갈곳도 없습니다.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은 특별히 뭐 나쁜짓을 하지 않더라도, 단지 회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 만으로도 문제가 됩니다. 당장 사람을 구할 수가 없게 되고, 곧장 경쟁에 뒤쳐지니 말입니다. 특히, 그 사람이 중요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심각해 집니다.
그래서, 보통 이런 회사들은 꼼수를 씁니다. 사람을 고용하면서 각서를 쓰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전직 금지 각서"라는 것인데, 회사에서 해고당하거나 회사에서 퇴직했을 때, "저는 회사에 짤려도 3년 동안은 취직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3년이 가장 많고, 짧은 곳은 1,2년, 이상한 곳은 5년을 맹세하는 곳도 있습니다.
조금씩 변태스러움의 기운이 느껴지신다면,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자,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맹세" 각서일 뿐이고, 무슨 법률이나 지침이 아닙니다. 내가 각서에 서명했다고 하지만, 회사가 무슨 조폭조직도 아닌데, "야, 화영끔 연구원! 너 왜 우리 회사 관두고 딴데로가? 죽을래?" 그러면서 사람 감금하거나 강제노역시키거나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기술자나 연구원이 무슨 노비도 아닌데 말입니다. 정말로 회사에 문제가 된다면, 회사가 소송을 걸어서 연구원에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화영끔 연구원을 어디 가두거나 붙잡아 놓고 취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외국에 기술을 빼돌렸다" 입니다.
화영끔 연구원이 왜 회사를 관두는고 하니, 아마도 다른 나라 회사에 우리 회사의 기술을 빼돌리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두 가지 매우 유리한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렇게 될 경우, 산업스파이 사건이 되기 때문에, 무려 중앙정보부(국정원) 에서 출동해서 사람을 조사하게 됩니다. 단지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귀찮게 하고 고달프게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귀찮은 소송과 조사 작업을 중정과 검찰에서 대신 맡아 준다는 엄청난 이점도 있습니다.
무려 중정이 하는 일인데, 호락호락할리가 없지 않습니까? 3심까지 재판 진행하면, 짧아도 2,3년 길면 5년이상 재판이 진행됩니다. 그 긴 기간동안 변호사 비용은 마구 날아가고, 재판정 들락거리랴, 감옥에 안가려고 신경쓰랴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해집니다. 당연히 그 긴시일 동안 새 직장을 구하거나, 편안하게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결과적으로 말끔한 무죄 판결 받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촉망받는 연구원이었다가 갑자기 재판에 잘못엮인 죄아닌 죄로 긴긴 법정공방 과정에서 가정파탄나고, 재산날리고, 정신병까지 얻어서 사람 폐인되고 인생 망치는 경우 종종 있습니다.
반대로, 이렇게 2,3년 끌면, 무죄건 유죄건 관계없이 반대편에서는 사실상 승리한 것입니다. 무죄라도 반대편에서는 상관없습니다. 어쨌거나, 반대편에서는 화영끔 연구원이 나가서 입을 손실을 메꾸는데 충분한 시간을 벌지 않았습니까? 화영끔 연구원이 토요타 같은 회사로 가서 최신형 브레이크를 개발해낼지도 모르는데, 재판하는 3년간 그걸 지연시켰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입니다. 애꿎은 화영끔만 괜히 재판에서 이기고도 폐인될 뿐이지만, 반대편으로서는 잃을게 없습니다.
둘째는, 사건을 "외국에 기술 빼돌렸다"로 몰면, 여론에서 아주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요즘에야, 인터넷 덕분에 기술자, 연구원들이 죽어라 덧글을 달아대기에 좀 덜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술 빼돌리려다가 잡혀~" 같은 기사 뜨면, 사실확인이야 어찌되었건 일단 "매국노"라고 욕해대는 것이 우리문화입니다. 무죄추정 원칙 같이 이런때 쓰라고 있는 이야기는 거의 아무도 신경안쓰는 듯 합니다. 중정에서 요원들이 들이닥쳐서 수사하러 오는데다가, (보통 심리적 압박감을 이용하기 위해서 새벽 2시, 3시 경에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들이닥쳐서 집을 뒤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인종차별 의식이 꽤 널리 퍼져있는 중국/대만 쪽과 어떻게 엮여 있다 싶으면 "너무나 큰 문제다" 라는 인식 때문에 구속되어서 정식 재판 이전에 일단 빵에 갖히고 부터 보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연구원과 기술자 쪽이 "죄인"과 "악인"의 위치에 서 버리게 되어 버립니다. 브레이크 연구하던 사람이 법정에서 검찰들과 회사의 법무팀을 상대로 싸워다가는 것만해도 매우 고달픈데, 도덕적으로도 매국노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연구원 입장에서는 가정과 직장을 포기하고 재판을 해야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항상 그런 일을 하던 사람들이 자기 직업대로 재판정에 서는 것 뿐입니다. 심리적으로도 여러모로 무척 괴롭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식으로 사람을 얽어 맬 수 있는 과학/기술 보호 법률이 무려 열가지 정도가 있었습니다. 제 말이 아니고, 모 산업자원부 고위 관계자가 언론을 통해 스스로 밝힌 이야기 입니다.
이것이, 작년까지 한국의 비참하다면 비참하고 황당하다면 황당한 현실이었습니다. "직장을 옮기면, '기술 빼돌리기를 추궁'해서 빵에 가두고 징역을 살리겠다면서 괴롭힐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자들은 천년전에 망이, 망소이 형제를 따라 "사람 대접 해달라"며 항쟁한 고려시대 기술자들과 별반 다를바 없다는 푸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 망이, 망소이 형제가 이끈 혁명군의 주요 거점이 현재의 공주, 유성, 대덕연구단지 일대였습니다.
작년까지는 그랬다면, 올해는 어떻게 되느냐.
올해에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즉, 이제는 "직장을 옮기면, '기술 빼돌리지 않아도' 빵에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률이 하나 더 추가된 것입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바로, 2004년, 이광재․강혜숙․권선택.김교흥․김낙순․김덕규.김원웅․김재윤․김재홍.김태년․김혁규․김현미.노영민․노현송․박재완.박찬숙․배일도․백원우. 서갑원․서재관․신국환.안민석․엄호성․염동연.오제세․이근식.이은영․정문헌․정성호.정청래․조일현․최인기.한병도 등과 현재 범여권의 모 대통령 선거 후보 등등 총 20여명의 국회의운들이 힘을 합해 발의해서 만든, "산업기술보호법"이라는 희대의 악법 때문입니다.
이 법안의 내용은, "산업기술"에 한해서는, 아무런 악의 없이 어떤 기술도 빼돌리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기술이 이전된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3년까지 빵에 집어 넣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36조 3항) 뭘 "산업기술"로 하는지는 중앙정부부처의 두령들이 스스로 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우기, 만약 외국 회사로 취업하거나, 외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일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엮이게 된다면, 어떤 법도 어기지 않고 모든면에서 우호적인 완전히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다 하더라도, 어쨌건 가볍게 5년까지 빵에 집어 넣을 수 있습니다. (14조 5항) 만약 빵에 가지 않고 싶으면, 산업자원부 장관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기술자와 연구원을 정부가 구속하는 자리에서 계속 일하도록 일제히 통제시키려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만약, 너무나 너무나 억울할 경우에, 산업자원부 산하 단체에 조정 신청을 할 수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 "조정 신청"은 별 구속력도 없거니와, 조정 신청을 접수하고 검토 받으려면 "소정의 수수료"를 자비로 납부해야 합니다. 대체 이딴 법을 왜 시행하는지 도무지 알기 어려운데, 법조문에 실린 "목적"을 보면, 무려 " 국가의 안전보장 (어디서 많이 듣던 말)과 국민경제의 발전 (역시 어디서 많이 듣던말) 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겨우 이정도라면(?), 어느 관료조직이라도 종종 저지르곤 하는 다양한 바보짓들에 비해서 특별히 "희대의 악법" 으로 부각될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미국에도 각 주에 여러 황당한 법안들이 남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말로 아름답고 멋진 대목이 추가로 들어가 있으니, 바로 이 법안의 37조 입니다.
이 법안 37조의 내용은 "'직장을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빵에 넣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악명높은 "예비, 음모" 조항입니다.
즉, 실제로 기술을 이전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하더라도, 그럴 기미가 있다고만 판단되면, 3년까지 빵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조항이 대명천치에 멀쩡하게 법 조항에 들어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 법안을 발의자로 나서서 이런 법률이 제정되도록 앞장선 20인의 국회의원들은 모 범여권 대통령 선거 후보를 비롯하여, 대부분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한다느니, 폐지해야한다느니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양반들은 정말로 기술자나 연구원들은, 일반 시민과는 다른 무슨 특별한 종류의 인간으로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기술자나 연구원들은 별종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특별관리해서 꼼짝못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그런것을 "천민"이니, "백정"이니 좀 나가면 "노비"니 하고 부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국회의원이라고 명패만 금빛으로 폼나게 새겨 놓았지, 사실 그냥 엎드려 퍼질러 자다가 누가 서류 내밀면, 아무거나 도장 쿡쿡 찍어 주는 일만 한거 아닌가 하는 상상도 감히 해 봅니다. 똑바로 생각하면서 읽어보기만 하면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20명 중에 열댓명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따위 짓을 해 놓은 것은, 말만 국회의원이지, 자기 이익 쫓아서 의회장 바닥에 드러눕고 몸싸움이나 하고, TV카메라 들어오면 시민들에게 자극적인 대사나 할 궁리만 하지, 대체 뭐하는 인간들인지 모르겠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게, 국회의원이라면, 저도 누구 못지 않게 잘 할 수 있습니다. 도장 들어서 빨간 인주에 골고루 묻힌뒤에 종위위에 찍는 거. 저도 양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므로, 아주 잘 할 수 있습니다. 덩치 크고 맷집 좋아서 몸싸움도 잘할 자신 있습니다. (시켜주세요.)
여기서 잠깐 시각을 바꿔서, 비난만 하지 말고 조금만 더 내부를 상상해 보면, 또 더 재미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정부부처의 공무원들. 다들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그 어렵다는 고시 합격한 수재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맨날 폭탄주 마시면서 접대 받으러 가서 소쩍쿵 노래에 맞춰서 영구 땐싱이나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다들 두뇌가 있고, 금치산자가 아닌 정상적인 인간들인데, 이런 법의 문제점을 모를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딴 법을 만든 것입니까?
명목상의 이유야,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입니다만, 현실적인 다른 이유들도 추가로 좀 찾아 보겠습니다. 이 양반들이 어디서 뇌물먹었다거나, 사상이 괴이하다거나, 하는 근거 없는 생각 없이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만 몇개 골라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유력한 것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법안을 꾸민 부처인 모 부처에 돈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그 감시와 관리, 조정의 주체를 모 정부 부처로 하고 있습니다. 법이 시행되면, 법 집행을 위해서, 무슨 위원회도 만들고, 위원도 뽑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해당 부처에 부하직원들을 늘릴 수 있고, 예산도 그만큼 더 타먹을 수 있습니다. 모든 정부부처들은 이런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누가 부하 더 생기고, 부처 더 커지고, 돈 더 많아진다는데 싫어하겠습니까. 당연히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 입니다.
따라서, 당장 자기 부처에 실적을 만들고, 예산을 따오려면, 뭔가 큰 껀수를 저질러야 하고, "산업기술보호법" 같은 정도의 껀수면 꽤 부작용이 있다손 치더라도 해볼만한 건덕지가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TV와 신문에 나와서 말하기에 폼나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에 유행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 따라온다' 론" 입니다. 당연히, 중국의 기술이 한국을 추격하네마네, 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또, 미래에는 기술이 중요하다. 과학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는 어릴때 우주소년 아톰 볼때 부터 항상 듣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인터넷 쓰고, 휴대전화 쓰다보면, 어, 과학기술 뭔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이 나라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뭔가를 했다고 좀 설쳐야 폼도 나고 말할 거리가 생깁니다. 그런데, 뭐가 도움이 되는지 금방 알기 어렵습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싶어서 그렇게 뼈빠지게 선거 운동했고, 나라에서 봉급도 두둑히 준다면, 좀 공부하고 자기가 도장찍을 법안에 대해서는 스스로 고민도 좀 해봐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머리도 아프고, 단식투쟁이니 삼보일배니 뭐 다른 쇼도 하느라 피곤하기도 합니다. TV출연이나, 옷 뭐 입고 다닐지, 누구한테 인사하러 가야 장차관 자리 하나 떨어질지 다른 궁리도 많이 해야 합니다. 법안이야, 뭐, 겨우 국회의원의 본분에 지나지 않는 일이지 않습니까? (대체 그럼 국회의원 뭐하러 한 겁니까?)
생각안하고 그냥 쉽게쉽게 넘어가려고 하기 쉬울 것입니다. 뭔가, 금방 쉽게 와닿는 거에 나도 하나 이름 대면서 끼고 싶은데, "산업기술보호법" 이거 좀 알 것 같습니다.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는 목적도 어디서 많이 듣던 거창한 표현으로 그럴싸하게 들리고, "산업스파이" 뭐 이런거 "원더우먼"이나 "미녀삼총사" 이런데서도 많이 본 거 같습니다. 옳거니, 하고 동참해 보는 것입니다.
사실 비슷한 법안이, 정부부처의 주도로 한번 통과될 뻔한 일이 있었는데, 세를 몰지 못하고, 과학기술계에서 반발도 해서 무산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거 지켜보는 거 참 피말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산된지 채 석달이 지나지 않아서,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 20명 국회의원 일당들이 갑자기 튀어 나왔습니다. 정부부처 주도로 통과되던 것을 겨우 막았더니, 이 양반들이 국회의원 주도로 법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20명 각개 격파를 할 수도 없고 하니, 시민단체에서 접촉하기도 더 어렵습니다. 결국 그렇게해서 법안이 나오고 통과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20명의 국회의원들과 그 중에서 대통령 하겠나고 나온 모 범여권 후보에게,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속칭 "산업기술보호법"은 2006년 10월 27일에 제정되어서, 현재 공포되어, 시행중에 있습니다. 원래, 법안의 명칭은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이었습니다만, 최종적으로 "지원"이란 말을 빼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아주 약간은 솔직해 진 것이라고 할지.
그 외에도 이 법안에는 "이공계 대학의 교수 및 학생들도 모조리 대상이다"라든가, "이익 목적 없이 인류의 공공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연구도 하여간 처벌할 수 있다"라든가, 별별 이상한 내용들이 속속 숨어 있습니다. 원래는 명시적으로 "직장을 옮길 수 없다"라는 문구를 집어 넣으려고 했는데, S모 단체등, 워낙 과학기술계에서 반발이 심하다보니, 그 말은 뺐다고 합니다. 무슨 고대 인도 카스트 제도도 아닌데, 어떻게 "직장을 옮길 수 없다"라는 문구를 넣으려고 상상했는지, 그 상상 조차가 좀 황당무계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길게 글을 썼는데, 더 흥미진진한 것은 후속대책들입니다.
당연히 이런 법이 시행 되게 되면, 국내 기술자, 연구원들은 최대한 국내 회사를 기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국내에는 중국이나 인도, 러시아등의 해외 기술진들이 연구를 하게 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국내 과학 발전이 뒤쳐지게 되고, 외화가 유출되는 것은 일단 둘째치고, 아예 이 "산업기술보호법" 때문에 오히려 기술유출이 더 심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이렇게 해서 해외 연구인력이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 이 양반들은 훨씬더 원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자연스럽게 국내의 기술이 해외로 이전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이따위 법안이 있는 한국에서 박대받는 기술자로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훨씬 대우가 좋은 곳으로 마음먹을 확률이 높습니다. 더하야, 국내 연구원들은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옭아매어 빵에 집어넣을 수 있지만, 이따위 법을 내세워 외국 연구원들을 잡아 오기는 어렵습니다. 한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였다고 하지만, 설마 이런 법을 빌미로 내세워서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와 맞붙으려 하겠습니까?
거기에다, 한미FTA 이니, 하는 국제 통상 조약에서는 공정거래를 위해서 이런류의 어림없는 규제들을 혁파하는 방향으로 치달아 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계적으로 갖가지 문제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난감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국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어떻게 몰래 외국인도 붙잡아 오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어떻게 교묘하게 해서 조약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라는 류의 기이한 발상이 돌고 이습니다.
후속대책 들 중에서 저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과학기술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전주기적 과학기술 인력양성 정책"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목만 해도 초특급 멋진데, 이것의 내용은, 이따위 불법적인 법률(?) 이 횡행하는 곳이다보니, 워낙에 과학기술 인력 상황이 이상해진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한마디로 아무도 기술자 안되고, 최대한 연구원은 안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 싶으니,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수한 과학 기술 인력을 유지해 나갈 묘수가 없을까 해서 제안된 것입니다.
이 신출귀몰한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정부 주도로 총명한 어린이들을 뽑아서, 특수 교육을 시키고, 이 어린이들이 과학 기술 연마하도록 정부에서 기르고, 이 사람들이 자라면 정부에서 직업을 관리하고, 직장에서 하는 연구 상황을 정부에서 감독한 뒤, 정부에서 노후와 은퇴를 보장하여, 한 명의 인간을 "우수 과학 인재"로 정부에서 한 평생 관리 유지하겠다는, 그야말로 백년지대계의 장대무쌍한 계획입니다. (이게, 농담이나 SF물에 나오는 줄거리가 아니라 진짜, 대통령 앞에 앉혀 두고 기자들 세워둔채 발표한 진짜입니다.)
이른바, "유년에서 황혼까지" 과학기술인은 정부에서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브라보. "유년에서 황혼까지"라는 일본식 한자어가 두 개씩이나 섞인 표현도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언론사를 통해 이야기한 말입니다. 계획 자체의 문제점은 둘째치고(이걸 둘째 친다는게 참 서글픕니다만), 지금 우리 대통령이 유년시절을 보낸 시기가 제1공화국 때인데, 이 사람이 아직도 현역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그때 정책 중에 지금까지 잘 시행되고 있는게 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장대무비한 계획을 위해서, 우리의 놀라운 대한민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모든 이공계 인력을 대상으로, 인간을 학력.직종.연령.성별 등으로 구분하고, 그 인간들이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의 지역별 분포현황을 조사하여, 일괄적으로 집대성한 "국가 과학기술 인력 지도(map)"를 작성하는 대장정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글이 길어졌는데, 혹시나 선거법 위반 게시물이 될 소지가 있다면, 요청되는대로 수정하겠습니다. 사실 글의도 자체도, 문제의 20인 일당과 그 중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모 범여권 후보를 굳이 비난하는 것만 목적이라기 보다는, 지금이라도 실수를 깨닫고, 어떻게든 좀 수습하고 반성하는 태도도 보여주었으면 싶어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사소하게 책상머리에서 서명하고 도장찍는 일이 일파만파 퍼져나가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 짚어보고 싶어서 써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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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항상 좋은 글 많이 읽어 왔습니다만, 직접 글 남기는 것은 매우 오랫만인듯 합니다.
요즘 형국을 보다가, 모 게시판에 올린 글을 편집하여, 글을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좀 흥미롭게 쓰려고 하다보니, 약간 거친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과하게 잘못된 내용이 있다 싶으시면, 무엇이든 지적해주시면 즉각즉각 반영하겠습니다.
영화 같은데 보면, 사업상의 기밀을 외국에 빼돌려서 제 배를 불리려는 나쁜놈이 악당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근의 예로 꼽자면, 박중훈, 차태현이 나온 "투 가이즈" 같은 영화가 있겠습니다. "화이트 칼라 범죄"니, "배운놈이 더 약아빠진 매국노"라느니 하는 이야기와 함께 자주 회자되는 일입니다.
당연히 이런 짓을 하다가 들키면,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법에는 이유는 왜인지 상당히 알기 어렵지만, 빼돌린 기밀이 "기술" 분야이면, 손해 배상을 다 해줘서 금전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게 해 준다하더라도, 정부에서 죄를 물어 감옥에 가둘 수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과학"이나 "기술"이 가지는 무슨 특별한 의의 같은 것에 이유가 있을진데, 정확한 영문은 법률에 잘 설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좀 알기 어렵습니다.
여기까지만해도 그러려니 싶습니다만, 문제가 점점 괴기스러워지는 발단은 과학기술 분야는 내용이 좁고 깊게 세분화 되어 있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영끔 연구원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양반은 4륜구동 자동차의 브레이크 체계 설계 기술을 연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자동차 브레이크 체계랑 상관있는 회사가 무슨 냉면집이나 붕어빵장사, 치과의사나 변호사 처럼 많지가 않습니다. 붕어빵 장사야 재식이네 붕어빵 집에서 한 사람 나가면, 옆동네 듀나네 붕어빵집에서 한사람 고용해 오면 되고, 변호사가 로펌에서 스스로 나가면, 한해에도 우수수 쏟아지는 고시 합격자들 중에 한 사람 데려 오면 됩니다.
그러나 브레이크 체계 설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자동차 회사 딱 한군데고, 순수연구목적으로 연구하는 기관도 한두군데 입니다. 한 사람 나가면 갑자기 데려올 곳도 없고, 한 사람 쫓겨나면 또 갈곳도 없습니다.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은 특별히 뭐 나쁜짓을 하지 않더라도, 단지 회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 만으로도 문제가 됩니다. 당장 사람을 구할 수가 없게 되고, 곧장 경쟁에 뒤쳐지니 말입니다. 특히, 그 사람이 중요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심각해 집니다.
그래서, 보통 이런 회사들은 꼼수를 씁니다. 사람을 고용하면서 각서를 쓰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전직 금지 각서"라는 것인데, 회사에서 해고당하거나 회사에서 퇴직했을 때, "저는 회사에 짤려도 3년 동안은 취직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3년이 가장 많고, 짧은 곳은 1,2년, 이상한 곳은 5년을 맹세하는 곳도 있습니다.
조금씩 변태스러움의 기운이 느껴지신다면,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자,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맹세" 각서일 뿐이고, 무슨 법률이나 지침이 아닙니다. 내가 각서에 서명했다고 하지만, 회사가 무슨 조폭조직도 아닌데, "야, 화영끔 연구원! 너 왜 우리 회사 관두고 딴데로가? 죽을래?" 그러면서 사람 감금하거나 강제노역시키거나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기술자나 연구원이 무슨 노비도 아닌데 말입니다. 정말로 회사에 문제가 된다면, 회사가 소송을 걸어서 연구원에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화영끔 연구원을 어디 가두거나 붙잡아 놓고 취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외국에 기술을 빼돌렸다" 입니다.
화영끔 연구원이 왜 회사를 관두는고 하니, 아마도 다른 나라 회사에 우리 회사의 기술을 빼돌리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두 가지 매우 유리한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렇게 될 경우, 산업스파이 사건이 되기 때문에, 무려 중앙정보부(국정원) 에서 출동해서 사람을 조사하게 됩니다. 단지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귀찮게 하고 고달프게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귀찮은 소송과 조사 작업을 중정과 검찰에서 대신 맡아 준다는 엄청난 이점도 있습니다.
무려 중정이 하는 일인데, 호락호락할리가 없지 않습니까? 3심까지 재판 진행하면, 짧아도 2,3년 길면 5년이상 재판이 진행됩니다. 그 긴 기간동안 변호사 비용은 마구 날아가고, 재판정 들락거리랴, 감옥에 안가려고 신경쓰랴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해집니다. 당연히 그 긴시일 동안 새 직장을 구하거나, 편안하게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결과적으로 말끔한 무죄 판결 받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촉망받는 연구원이었다가 갑자기 재판에 잘못엮인 죄아닌 죄로 긴긴 법정공방 과정에서 가정파탄나고, 재산날리고, 정신병까지 얻어서 사람 폐인되고 인생 망치는 경우 종종 있습니다.
반대로, 이렇게 2,3년 끌면, 무죄건 유죄건 관계없이 반대편에서는 사실상 승리한 것입니다. 무죄라도 반대편에서는 상관없습니다. 어쨌거나, 반대편에서는 화영끔 연구원이 나가서 입을 손실을 메꾸는데 충분한 시간을 벌지 않았습니까? 화영끔 연구원이 토요타 같은 회사로 가서 최신형 브레이크를 개발해낼지도 모르는데, 재판하는 3년간 그걸 지연시켰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입니다. 애꿎은 화영끔만 괜히 재판에서 이기고도 폐인될 뿐이지만, 반대편으로서는 잃을게 없습니다.
둘째는, 사건을 "외국에 기술 빼돌렸다"로 몰면, 여론에서 아주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요즘에야, 인터넷 덕분에 기술자, 연구원들이 죽어라 덧글을 달아대기에 좀 덜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술 빼돌리려다가 잡혀~" 같은 기사 뜨면, 사실확인이야 어찌되었건 일단 "매국노"라고 욕해대는 것이 우리문화입니다. 무죄추정 원칙 같이 이런때 쓰라고 있는 이야기는 거의 아무도 신경안쓰는 듯 합니다. 중정에서 요원들이 들이닥쳐서 수사하러 오는데다가, (보통 심리적 압박감을 이용하기 위해서 새벽 2시, 3시 경에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들이닥쳐서 집을 뒤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인종차별 의식이 꽤 널리 퍼져있는 중국/대만 쪽과 어떻게 엮여 있다 싶으면 "너무나 큰 문제다" 라는 인식 때문에 구속되어서 정식 재판 이전에 일단 빵에 갖히고 부터 보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연구원과 기술자 쪽이 "죄인"과 "악인"의 위치에 서 버리게 되어 버립니다. 브레이크 연구하던 사람이 법정에서 검찰들과 회사의 법무팀을 상대로 싸워다가는 것만해도 매우 고달픈데, 도덕적으로도 매국노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연구원 입장에서는 가정과 직장을 포기하고 재판을 해야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항상 그런 일을 하던 사람들이 자기 직업대로 재판정에 서는 것 뿐입니다. 심리적으로도 여러모로 무척 괴롭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식으로 사람을 얽어 맬 수 있는 과학/기술 보호 법률이 무려 열가지 정도가 있었습니다. 제 말이 아니고, 모 산업자원부 고위 관계자가 언론을 통해 스스로 밝힌 이야기 입니다.
이것이, 작년까지 한국의 비참하다면 비참하고 황당하다면 황당한 현실이었습니다. "직장을 옮기면, '기술 빼돌리기를 추궁'해서 빵에 가두고 징역을 살리겠다면서 괴롭힐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자들은 천년전에 망이, 망소이 형제를 따라 "사람 대접 해달라"며 항쟁한 고려시대 기술자들과 별반 다를바 없다는 푸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 망이, 망소이 형제가 이끈 혁명군의 주요 거점이 현재의 공주, 유성, 대덕연구단지 일대였습니다.
작년까지는 그랬다면, 올해는 어떻게 되느냐.
올해에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즉, 이제는 "직장을 옮기면, '기술 빼돌리지 않아도' 빵에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률이 하나 더 추가된 것입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바로, 2004년, 이광재․강혜숙․권선택.김교흥․김낙순․김덕규.김원웅․김재윤․김재홍.김태년․김혁규․김현미.노영민․노현송․박재완.박찬숙․배일도․백원우. 서갑원․서재관․신국환.안민석․엄호성․염동연.오제세․이근식.이은영․정문헌․정성호.정청래․조일현․최인기.한병도 등과 현재 범여권의 모 대통령 선거 후보 등등 총 20여명의 국회의운들이 힘을 합해 발의해서 만든, "산업기술보호법"이라는 희대의 악법 때문입니다.
이 법안의 내용은, "산업기술"에 한해서는, 아무런 악의 없이 어떤 기술도 빼돌리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기술이 이전된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3년까지 빵에 집어 넣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36조 3항) 뭘 "산업기술"로 하는지는 중앙정부부처의 두령들이 스스로 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우기, 만약 외국 회사로 취업하거나, 외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일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엮이게 된다면, 어떤 법도 어기지 않고 모든면에서 우호적인 완전히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다 하더라도, 어쨌건 가볍게 5년까지 빵에 집어 넣을 수 있습니다. (14조 5항) 만약 빵에 가지 않고 싶으면, 산업자원부 장관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기술자와 연구원을 정부가 구속하는 자리에서 계속 일하도록 일제히 통제시키려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만약, 너무나 너무나 억울할 경우에, 산업자원부 산하 단체에 조정 신청을 할 수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 "조정 신청"은 별 구속력도 없거니와, 조정 신청을 접수하고 검토 받으려면 "소정의 수수료"를 자비로 납부해야 합니다. 대체 이딴 법을 왜 시행하는지 도무지 알기 어려운데, 법조문에 실린 "목적"을 보면, 무려 " 국가의 안전보장 (어디서 많이 듣던 말)과 국민경제의 발전 (역시 어디서 많이 듣던말) 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겨우 이정도라면(?), 어느 관료조직이라도 종종 저지르곤 하는 다양한 바보짓들에 비해서 특별히 "희대의 악법" 으로 부각될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미국에도 각 주에 여러 황당한 법안들이 남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말로 아름답고 멋진 대목이 추가로 들어가 있으니, 바로 이 법안의 37조 입니다.
이 법안 37조의 내용은 "'직장을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빵에 넣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악명높은 "예비, 음모" 조항입니다.
즉, 실제로 기술을 이전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하더라도, 그럴 기미가 있다고만 판단되면, 3년까지 빵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조항이 대명천치에 멀쩡하게 법 조항에 들어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 법안을 발의자로 나서서 이런 법률이 제정되도록 앞장선 20인의 국회의원들은 모 범여권 대통령 선거 후보를 비롯하여, 대부분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한다느니, 폐지해야한다느니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양반들은 정말로 기술자나 연구원들은, 일반 시민과는 다른 무슨 특별한 종류의 인간으로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기술자나 연구원들은 별종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특별관리해서 꼼짝못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그런것을 "천민"이니, "백정"이니 좀 나가면 "노비"니 하고 부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국회의원이라고 명패만 금빛으로 폼나게 새겨 놓았지, 사실 그냥 엎드려 퍼질러 자다가 누가 서류 내밀면, 아무거나 도장 쿡쿡 찍어 주는 일만 한거 아닌가 하는 상상도 감히 해 봅니다. 똑바로 생각하면서 읽어보기만 하면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20명 중에 열댓명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따위 짓을 해 놓은 것은, 말만 국회의원이지, 자기 이익 쫓아서 의회장 바닥에 드러눕고 몸싸움이나 하고, TV카메라 들어오면 시민들에게 자극적인 대사나 할 궁리만 하지, 대체 뭐하는 인간들인지 모르겠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게, 국회의원이라면, 저도 누구 못지 않게 잘 할 수 있습니다. 도장 들어서 빨간 인주에 골고루 묻힌뒤에 종위위에 찍는 거. 저도 양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므로, 아주 잘 할 수 있습니다. 덩치 크고 맷집 좋아서 몸싸움도 잘할 자신 있습니다. (시켜주세요.)
여기서 잠깐 시각을 바꿔서, 비난만 하지 말고 조금만 더 내부를 상상해 보면, 또 더 재미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정부부처의 공무원들. 다들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그 어렵다는 고시 합격한 수재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맨날 폭탄주 마시면서 접대 받으러 가서 소쩍쿵 노래에 맞춰서 영구 땐싱이나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다들 두뇌가 있고, 금치산자가 아닌 정상적인 인간들인데, 이런 법의 문제점을 모를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딴 법을 만든 것입니까?
명목상의 이유야,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입니다만, 현실적인 다른 이유들도 추가로 좀 찾아 보겠습니다. 이 양반들이 어디서 뇌물먹었다거나, 사상이 괴이하다거나, 하는 근거 없는 생각 없이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만 몇개 골라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유력한 것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법안을 꾸민 부처인 모 부처에 돈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그 감시와 관리, 조정의 주체를 모 정부 부처로 하고 있습니다. 법이 시행되면, 법 집행을 위해서, 무슨 위원회도 만들고, 위원도 뽑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해당 부처에 부하직원들을 늘릴 수 있고, 예산도 그만큼 더 타먹을 수 있습니다. 모든 정부부처들은 이런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누가 부하 더 생기고, 부처 더 커지고, 돈 더 많아진다는데 싫어하겠습니까. 당연히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 입니다.
따라서, 당장 자기 부처에 실적을 만들고, 예산을 따오려면, 뭔가 큰 껀수를 저질러야 하고, "산업기술보호법" 같은 정도의 껀수면 꽤 부작용이 있다손 치더라도 해볼만한 건덕지가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TV와 신문에 나와서 말하기에 폼나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에 유행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 따라온다' 론" 입니다. 당연히, 중국의 기술이 한국을 추격하네마네, 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또, 미래에는 기술이 중요하다. 과학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는 어릴때 우주소년 아톰 볼때 부터 항상 듣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인터넷 쓰고, 휴대전화 쓰다보면, 어, 과학기술 뭔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이 나라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뭔가를 했다고 좀 설쳐야 폼도 나고 말할 거리가 생깁니다. 그런데, 뭐가 도움이 되는지 금방 알기 어렵습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싶어서 그렇게 뼈빠지게 선거 운동했고, 나라에서 봉급도 두둑히 준다면, 좀 공부하고 자기가 도장찍을 법안에 대해서는 스스로 고민도 좀 해봐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머리도 아프고, 단식투쟁이니 삼보일배니 뭐 다른 쇼도 하느라 피곤하기도 합니다. TV출연이나, 옷 뭐 입고 다닐지, 누구한테 인사하러 가야 장차관 자리 하나 떨어질지 다른 궁리도 많이 해야 합니다. 법안이야, 뭐, 겨우 국회의원의 본분에 지나지 않는 일이지 않습니까? (대체 그럼 국회의원 뭐하러 한 겁니까?)
생각안하고 그냥 쉽게쉽게 넘어가려고 하기 쉬울 것입니다. 뭔가, 금방 쉽게 와닿는 거에 나도 하나 이름 대면서 끼고 싶은데, "산업기술보호법" 이거 좀 알 것 같습니다.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는 목적도 어디서 많이 듣던 거창한 표현으로 그럴싸하게 들리고, "산업스파이" 뭐 이런거 "원더우먼"이나 "미녀삼총사" 이런데서도 많이 본 거 같습니다. 옳거니, 하고 동참해 보는 것입니다.
사실 비슷한 법안이, 정부부처의 주도로 한번 통과될 뻔한 일이 있었는데, 세를 몰지 못하고, 과학기술계에서 반발도 해서 무산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거 지켜보는 거 참 피말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산된지 채 석달이 지나지 않아서,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 20명 국회의원 일당들이 갑자기 튀어 나왔습니다. 정부부처 주도로 통과되던 것을 겨우 막았더니, 이 양반들이 국회의원 주도로 법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20명 각개 격파를 할 수도 없고 하니, 시민단체에서 접촉하기도 더 어렵습니다. 결국 그렇게해서 법안이 나오고 통과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20명의 국회의원들과 그 중에서 대통령 하겠나고 나온 모 범여권 후보에게,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속칭 "산업기술보호법"은 2006년 10월 27일에 제정되어서, 현재 공포되어, 시행중에 있습니다. 원래, 법안의 명칭은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이었습니다만, 최종적으로 "지원"이란 말을 빼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아주 약간은 솔직해 진 것이라고 할지.
그 외에도 이 법안에는 "이공계 대학의 교수 및 학생들도 모조리 대상이다"라든가, "이익 목적 없이 인류의 공공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연구도 하여간 처벌할 수 있다"라든가, 별별 이상한 내용들이 속속 숨어 있습니다. 원래는 명시적으로 "직장을 옮길 수 없다"라는 문구를 집어 넣으려고 했는데, S모 단체등, 워낙 과학기술계에서 반발이 심하다보니, 그 말은 뺐다고 합니다. 무슨 고대 인도 카스트 제도도 아닌데, 어떻게 "직장을 옮길 수 없다"라는 문구를 넣으려고 상상했는지, 그 상상 조차가 좀 황당무계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길게 글을 썼는데, 더 흥미진진한 것은 후속대책들입니다.
당연히 이런 법이 시행 되게 되면, 국내 기술자, 연구원들은 최대한 국내 회사를 기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국내에는 중국이나 인도, 러시아등의 해외 기술진들이 연구를 하게 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국내 과학 발전이 뒤쳐지게 되고, 외화가 유출되는 것은 일단 둘째치고, 아예 이 "산업기술보호법" 때문에 오히려 기술유출이 더 심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이렇게 해서 해외 연구인력이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 이 양반들은 훨씬더 원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자연스럽게 국내의 기술이 해외로 이전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이따위 법안이 있는 한국에서 박대받는 기술자로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훨씬 대우가 좋은 곳으로 마음먹을 확률이 높습니다. 더하야, 국내 연구원들은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옭아매어 빵에 집어넣을 수 있지만, 이따위 법을 내세워 외국 연구원들을 잡아 오기는 어렵습니다. 한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였다고 하지만, 설마 이런 법을 빌미로 내세워서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와 맞붙으려 하겠습니까?
거기에다, 한미FTA 이니, 하는 국제 통상 조약에서는 공정거래를 위해서 이런류의 어림없는 규제들을 혁파하는 방향으로 치달아 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계적으로 갖가지 문제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난감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국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어떻게 몰래 외국인도 붙잡아 오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어떻게 교묘하게 해서 조약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라는 류의 기이한 발상이 돌고 이습니다.
후속대책 들 중에서 저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과학기술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전주기적 과학기술 인력양성 정책"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목만 해도 초특급 멋진데, 이것의 내용은, 이따위 불법적인 법률(?) 이 횡행하는 곳이다보니, 워낙에 과학기술 인력 상황이 이상해진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한마디로 아무도 기술자 안되고, 최대한 연구원은 안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 싶으니,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수한 과학 기술 인력을 유지해 나갈 묘수가 없을까 해서 제안된 것입니다.
이 신출귀몰한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정부 주도로 총명한 어린이들을 뽑아서, 특수 교육을 시키고, 이 어린이들이 과학 기술 연마하도록 정부에서 기르고, 이 사람들이 자라면 정부에서 직업을 관리하고, 직장에서 하는 연구 상황을 정부에서 감독한 뒤, 정부에서 노후와 은퇴를 보장하여, 한 명의 인간을 "우수 과학 인재"로 정부에서 한 평생 관리 유지하겠다는, 그야말로 백년지대계의 장대무쌍한 계획입니다. (이게, 농담이나 SF물에 나오는 줄거리가 아니라 진짜, 대통령 앞에 앉혀 두고 기자들 세워둔채 발표한 진짜입니다.)
이른바, "유년에서 황혼까지" 과학기술인은 정부에서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브라보. "유년에서 황혼까지"라는 일본식 한자어가 두 개씩이나 섞인 표현도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언론사를 통해 이야기한 말입니다. 계획 자체의 문제점은 둘째치고(이걸 둘째 친다는게 참 서글픕니다만), 지금 우리 대통령이 유년시절을 보낸 시기가 제1공화국 때인데, 이 사람이 아직도 현역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그때 정책 중에 지금까지 잘 시행되고 있는게 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장대무비한 계획을 위해서, 우리의 놀라운 대한민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모든 이공계 인력을 대상으로, 인간을 학력.직종.연령.성별 등으로 구분하고, 그 인간들이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의 지역별 분포현황을 조사하여, 일괄적으로 집대성한 "국가 과학기술 인력 지도(map)"를 작성하는 대장정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글이 길어졌는데, 혹시나 선거법 위반 게시물이 될 소지가 있다면, 요청되는대로 수정하겠습니다. 사실 글의도 자체도, 문제의 20인 일당과 그 중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모 범여권 후보를 굳이 비난하는 것만 목적이라기 보다는, 지금이라도 실수를 깨닫고, 어떻게든 좀 수습하고 반성하는 태도도 보여주었으면 싶어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사소하게 책상머리에서 서명하고 도장찍는 일이 일파만파 퍼져나가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 짚어보고 싶어서 써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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